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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가 좋아하는 도쿄 문방구 3편, 긴자 이토야와 겟코소

다인정
2026-09-21

*이 글의 사진은 2023년 12월 도쿄 취재 때 찍었습니다. 시간이 지난 만큼 매장 구성과 상품은 달라졌을 수 있어요. 주소와 영업시간은 2026년 9월에 다시 확인했습니다.

어른이가 좋아하는 도쿄 문방구,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소개할 곳은 문덕들의 꿈의 궁전인 긴자 ‘이토야’와 109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화방 ‘겟코소’다. 이토야와 겟코소는 문덕이라면 다 아는 곳이다. 그래도 빼놓을 수 없어 마지막까지 아껴 뒀다. 1탄에서 “총 6곳, 3개 시리즈”라고 호기롭게 약속했는데, 드디어 그 약속을 지킬 차례다. (보석상자 가장 깊은 곳에 넣어 둔 진주 목걸이를 꺼내는 기분이랄까.) 어른이가 좋아하는 도쿄 문방구 시리즈, 마지막 두 곳, 시작!

크리스마스 장식이 걸린 이토야 쇼윈도

▲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오너먼트로 꾸민 이토야의 쇼윈도

긴자 이토야(Itoya)

2 Chome-7-15 Ginza, Chuo City, Tokyo 104-0061 일본
월~토 10:00~20:00 · 일요일·공휴일 10:00~19:00 (2026년 9월 기준)
구글맵에서 보기“문덕의 꿈의 궁전, 이토야”
추천 제품: 카드, 편지봉투, 마스킹테이프, 도장

에르메스, 루이비통 같은 명품숍이 가득한 긴자 한편을 밝히는 빨간 클립을 봤다면, 문덕의 꿈의 궁전 이토야에 제대로 왔다. 이토야는 1904년에 문을 연 문구점으로, 빌딩 하나가 문구와 라이프스타일 아이템으로 가득 차 있다. 지하 1층부터 12층까지 이어지는 이토야는 문구, 필기류, 종이, 홈데코, 공예품까지 두루 볼 수 있는 대형 문구 백화점에 가깝다.

처음 이토야에 갔던 10년 전, 하루 종일 도쿄 곳곳을 누비며 여행을 하다가 긴자로 넘어왔던 저녁, 어둑해진 길거리를 밝히는 빨간 클립 간판을 보고 이토야에 들어섰다. 길고 넓은 공간, 벽면 가득 들어찬 카드들이 눈에 들어왔는데, 알록달록 다양한 색감과 디자인이 문덕의 심연을 파고들었다. 종일 걸어서 몸과 마음이 지쳤지만, 카드로 가득한 벽면을 보는 순간 도파민이 솟구치며 심장이 뛰는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어딜 봐도 아름다운 카드들을 보며 ‘너구나!’ 하는 마음의 소리가 빗발치고 급히 오르는 텐션에 어지럽기까지 하던 곳. 이게 이토야와 나의 아찔한 첫 만남이다.

since1904 문방구계의 증조할아버지

이토야는 1904년, 초대 이토 가쓰타로가 긴자 3초메에 연 문구점이다. 그런데 이 가게, 시작부터 남달랐다. 가게 이름을 ‘화한양문방구(和漢洋文房具) · STATIONERY’로 내걸었다. 일본 것도, 중국 것도, 서양 것도 다 있다는 뜻에 영어 단어까지 나란히 붙인 이름. 메이지 시대 한복판에 이런 간판이라니, 지금으로 치면 동네 문방구가 간판에 ‘한식·중식·양식 다 됩니다’를 써 붙인 셈이다.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본점이 불타 없어졌지만 마루노우치 빌딩 점포에서 영업을 재개했고, 1930년에는 지하 2층, 지상 8층짜리 건물까지 올렸다. 그리고 이토야는 2015년, 지금의 빨간 클립 건물을 새로 지어 문을 열었다. 이때부터 이토야는 물건을 사는 곳이 아니라 시간을 보내는 곳을 지향해 왔다. 120년이 넘은 문방구가 아직도 ‘어떻게 하면 손님이 더 오래 머물까’를 고민하고 있다니. (문방구계의 증조할아버지, 여전히 청춘이시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 문방구 버전

이토야를 한 문장으로 설명하라면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문방구 버전’이라고 하겠다. 초콜릿 공장의 유리 엘리베이터처럼, 층을 옮길 때마다 전혀 다른 방이 나타난다. 편지와 카드가 가득한 층, 펜과 필기구가 줄지어 선 층, 물감과 색연필이 늘어선 층까지. 층마다 주제가 분명해서 뭘 사야 할지 몰라도 괜찮다. 층층이 오르다 보면 오늘의 나에게 필요한 층이 알아서 나타난다. 문제는 모든 층이 ‘오늘의 나에게 필요한 층’처럼 보인다는 것. 그렇게 지갑은 층수만큼 가벼워진다. (문덕에게 12층은 축복이자 재앙이다.)

카드 한 장에 30분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은 역시 카드 코너다. 10년 전 나를 어지럽게 만들었던 그 벽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생일, 감사, 축하, 그냥 안부까지. 받을 사람의 얼굴을 한 명씩 떠올리며 고르다 보면 카드 한 장에 30분이 훌쩍 간다. (고르는 시간이 길수록 마음도 커지는 거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해 본다.)

혼자 이토야에 올 때면 이 코너만큼은 혼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와 함께였다면 편지를 쓸 친구와 지인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이렇게 사치스럽게 지체하기는 어려웠을 테니까.

벽 한가득 진열된 카드와 고르는 사람들

▲ 벽 한 면을 가득 채운 카드들. 연말이면 크리스마스 카드가 이 벽을 덮는다.

카드를 골랐다면 거기서 끝내지 말 것. 카드 색에 어울리는 편지봉투, 봉투를 여밀 마스킹테이프, 마지막으로 꾹 찍을 작은 도장까지 한 세트로 맞추는 게 이토야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다. 여행지에서 고른 카드는 오래간다. 여행이 끝나고도 편지 쓸 일이 생길 때마다 서랍에서 한 장씩 꺼내 쓰게 되니까. 기념품 중에 이만한 게 없다.

그리고 빨간 클립 건물만 보고 나오기 아쉽다면, 바로 뒤편의 별관 ‘K.Itoya’도 들러 보자. 지하 1층부터 3층까지, 액자와 어린이 문구를 파는 층, 인쇄와 청첩장을 맡아 주는 층으로 채워져 있다. 2024년 5월 새 단장을 마치면서 이토야 오리지널 제품과 커스터마이징 서비스에 더 힘을 줬다고 하니, 나만의 문구를 갖고 싶은 문덕이라면 한 블록만 더 걸어 볼 것.

겟코소 화방(Gekkoso)

8 Chome-7-2 Ginza, Chuo City, Tokyo 104-0061 일본 (에이주 빌딩 1층 · 화실은 지하 1층)
평일 11:00~18:00 · 토·일·공휴일 11:00~17:00 (2026년 9월 기준)
구글맵에서 보기“잠시 화가가 될 수 있는 곳”
추천 제품: 작은 드로잉북과 수첩, 손 모양 클립, 나팔 무늬가 새겨진 연필과 연필캡, 8B 연필

이토야가 화려한 대형 뮤지컬이라면, 겟코소는 골목 안쪽 작은 소극장이다. 긴자 8초메, 에이주 빌딩 앞에 선 작은 간판을 따라 안쪽으로 쑥 들어가야 비로소 나타나는 화방. 명품 거리 한복판에서 이 좁은 통로로 들어서는 순간, 방금까지 걷던 긴자가 거짓말처럼 멀어지는 듯했다.

어른이가 좋아하는 도쿄 문방구 3편, 긴자 이토야와 겟코소어른이가 좋아하는 도쿄 문방구 3편, 긴자 이토야와 겟코소

▲ 건물 앞 작은 간판을 따라 안쪽으로. 화살표가 가리키는 대로 따라가면 된다.

작은 가게를 물감과 그림 재료를 향한 로망으로 꽉꽉 채운 곳이었다. 덕후의 덕력을 노크하다 못해 막 주무르는 느낌이랄까. 한 바퀴 돌고 나면 이미 늦었다. 뭘 안 사고서는 도저히 나가지 못할 곳. (그리고 실제로 그냥 나오지 못했다.)

팔레트 모양의 OPEN 간판이 놓인 의자

▲ 팔레트 모양 나무 간판이 오늘 문을 열었다고 알려 준다.

달빛이 있는 집

겟코소(月光荘)는 이름부터 낭만적이다. 우리말로 옮기면 ‘달빛이 있는 집’. 1917년 창업자 하시모토 효조가 문을 열었을 때, 그를 아끼던 시인 요사노 뎃칸이 프랑스 시인 베를렌의 시에서 따와 이름을 지어 줬다고 한다. 아내 요사노 아키코는 이런 시 한 수를 보냈다. “넓은 하늘의 달에서 그대가 왔는가, 낮에도 빛나고 밤에도 빛나네.” 가게 간판 글씨도 아키코가 직접 쓴 것이라니, 물감 한 통도 달리 보일 수밖에.

친구를 부르는 호른

겟코소의 상징은 동그랗게 말린 호른이다. 이름하여 ‘친구를 부르는 호른’. 요사노 부부를 중심으로 모인 문화인들이 함께 만든 로고로, 소리를 울려 많은 사람이 모여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간판에도, 스케치북 표지에도, 연필 한 자루에도 이 호른이 찍혀 있다. 물건 하나를 사 들고 나오면, 나도 호른 소리에 불려 온 친구가 된 기분이다.

가게 안에 놓인 호른

▲ 가게 안쪽에 놓인 진짜 호른. 겟코소의 상징이다.

앞치마부터 붓까지, 없는 게 없다

이 가게가 특별한 이유는 가게 안의 화구와 문구가 전부 겟코소 오리지널이라는 점이다. 화가들의 요청을 하나씩 받아 가며 만들어 온 물건들. 1940년에는 코발트블루로 일본 최초의 순수 국산 물감을 만들었고, 이후 티타늄 화이트, ‘겟코소 핑크’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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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 한 면을 채운 색연필과 물감, 그리고 색색의 스케치북

물감과 색연필, 스케치북, 붓, 종이, 심지어 작업용 앞치마까지. 그림에 필요한 물건 중 여기 없는 것이 없었다. 특히 겟코소가 직접 개발한 물감이 있어서, 그림을 취미로 하거나 전문적으로 그리는 사람이라면 빈손으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곳이다.

벽에 걸린 작업 앞치마와 셔츠

▲ 물감 묻혀 가며 입을 작업 앞치마와 셔츠까지 갖춰져 있다.

그렇다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만을 위한 곳은 아니다.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작은 드로잉북이나 수첩 하나쯤은 손에 들고 나오게 된다. 기념품으로는 손 모양 클립, 나팔 무늬가 새겨진 연필과 연필캡을 추천한다. 작고 가벼워서 캐리어에 부담도 없다. 책상에 올려 두면 그 골목이 볼 때마다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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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른 로고가 찍힌 색연필 세트와 클립, 그리고 작은 드로잉북과 수첩. 선물용으로도 좋다.

마음껏 칠해 보세요

겟코소에서 가장 좋았던 건 물감을 자유롭게 써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가게 한쪽에 물감과 붓, 물통이 놓인 작은 테이블이 있고, 그 위로 앞서 다녀간 사람들이 남긴 색과 그림이 가득하다. 아예 마음껏 칠해 보라고 마련해 둔 자리라, 눈치 볼 필요가 없다. 고민되면 직원에게 물어봐도 좋다. 어떤 색이 어떤 종이에 어울리는지 같이 골라 준다. (그림 실력과 상관없이, 그 순간만큼은 화가가 된 기분이 든다.)

물감과 붓이 놓인, 색을 칠해 보는 코너

▲ 누구나 색을 칠해 볼 수 있는 자리. 앞사람들이 남긴 고양이 그림이 귀엽다.

종이 코너도 마찬가지다. 두께와 질감이 다른 스케치북마다 견본이 걸려 있어서, 같은 색을 이 종이 저 종이에 직접 칠해 보고 고를 수 있다. 특(特)아츠, 아츠, 우스… 이름만 봐서는 알 수 없는 종이의 차이를 손으로 확인하게 해 주는 방식이 좋았다.

종이 두께별로 걸린 견본 스케치북

▲ 종이 두께마다 걸린 견본. 직접 칠해 보고 고르면 된다.

건축가와 디자이너가 아끼는 스케치북

겟코소에서 가장 유명한 물건을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스케치북이다. 그중에서도 ‘우스텐(ウス点)’이라는 이름이 붙은 얇은 종이는 사연이 재미있다. 파나소닉의 전신인 마쓰시타전기의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요청해 만들어진 종이라고 한다. 1센티미터 간격으로 찍힌 연한 파란 점이 선을 대신해 눈금자 노릇을 하는데, 복사기에 넣으면 이 점만 쏙 빠지고 그림과 글씨만 남는다. 그래서 설계도를 그리는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이 특히 아낀다고. 우스텐 스케치북과 알루미늄 팔레트는 굿디자인 롱라이프 디자인상을 받았다.

종이는 우스, 우스텐, 아츠, 특아츠, 이로북, 포스트카드북까지 여섯 가지다. 연필과 목탄이 잘 먹는 얇은 종이부터 물을 흠뻑 머금어도 견디는 두꺼운 종이까지, 쓰임에 따라 고르면 된다. 크기는 손바닥만 한 0F(127×176mm)부터 두 손으로 받쳐 들어야 하는 8F(395×452mm)까지. 덕분에 스케치북 코너 앞에서만 한참을 서성이게 된다. (나만 그런 건 아닐 것이다. 옆 사람도 같은 자세로 서 있었다.)

제본도 눈여겨볼 만하다. 링이 겉으로 튀어나오지 않게 표지가 등까지 감싸는 ‘세구루미(背ぐるみ)’ 제본이라, 가방에 넣고 다녀도 링이 걸리거나 찌그러지지 않는다. 100년 넘게 같은 물건만 만들어 온 집은 이런 데서 티가 난다. 어찌나 야무진지, 한 권만 사려다 색깔별로 집어 들게 된다.

겟코소에는 가게만 있는 게 아니다. 지하에는 ‘화실(画室)’이라 부르는 갤러리가 있다. 심사를 거치면 누구나 전시를 열 수 있는 공간이고, 워크숍도 열린다. 물감을 파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물감으로 그린 그림이 걸릴 자리까지 만들어 두는 것. 겟코소가 100년 넘게 화가들의 단골집으로 남은 이유가 여기 있다. 전시 일정은 방문 전에 확인하는 편이 좋다. 전시 마지막 날은 평소보다 일찍 닫는다.

그리고 이 시리즈를 쓰면서 알게 된 반가운 사실 하나. 2탄에서 소개한 트래블러스 팩토리도 겟코소의 8B 연필과 색연필을 골라 함께 팔고 있다. 여행자의 문방구와 달빛이 있는 화방이 이렇게 이어져 있었다니! (역시 좋은 문방구는 좋은 문방구를 알아본다.)

여섯 곳의 문방구를 마치며

좋아하는 것만 잔뜩 하겠다며 떠난 여행에서, 결국 가장 오래 머문 곳은 문방구였다. 여섯 곳을 다시 꺼내 보니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모두 물건 너머에 사람이 보이는 곳이었다는 것. 파피에르 라보의 단정한 주인장 책상, 커피 한 잔 마시러 들어갔다가 두 손이 무거워져 나온 띵크오브띵즈, 데스크라보에서 20분 넘게 계산기를 함께 골라 준 스태프, 폐점 시간이 임박했는데도 서두르라는 말 한마디 없던 트래블러스 팩토리, 그리고 100년 넘게 자리를 지켜 온 이토야와 겟코소까지. 도쿄의 문방구는 결국, 문구를 아끼는 사람들이 만든 곳이었다.

1탄: 파피에르 라보, 띵크오브띵즈
2탄: 데스크라보, 트래블러스 팩토리
3탄: 이토야, 겟코소

구글맵 링크는 모두 저장해 두시길. 언젠가 도쿄에 가게 된다면, 이번엔 당신의 가방이 문구로 무거워질 차례다.

P.S.
여섯 곳을 다 적고 나니 벌써 또 가고 싶어졌습니다. 다음엔 어느 도시의 문방구가 궁금하세요?

*사진 촬영: 2023년 12월 · 영업 정보 확인: 2026년 9월. 방문 전 공식 홈페이지에서 한 번 더 확인하시길 권해요.


참고한 곳
이토야의 창업과 연혁: 銀座 伊東屋 공식 연혁
간판 「和漢洋文房具・STATIONERY」: 위 연혁 · 『ザ ステーショナリー 銀座・伊東屋100年物語』(ピエ・ブックス, 2004)
겟코소의 창업, 1940년 순국산 제1호 물감, 호른 로고: 月光荘 공식 소개
상호 「月光荘」의 유래와 요사노 아키코의 단가·친필 간판: 月光荘 「与謝野晶子 × GEKKO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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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사진의 모든 저작권은 핍풀에 있음을 알립니다.

Credit

글 & 사진    다인정(@manypeople__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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